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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 장맛비 살다보면

한겨례21에서 퍼왔습니다.

맞춤법 유감

[한겨레21 2003-07-16 17:09]


[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우리나라는 지난 세기 동안 참으로 놀랄 만한 격변의 시기를 거쳐왔다. 우리보다 더 빠른 변화를 맞은 나라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그 가운데서도 높은 순위에 든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여겨진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서 그동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그 변화 가운데 이른바 ‘맞춤법’이 있다. 그런데 이는 너무 많은 변화를 겪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 점이 많다고 말할 수 있다.

맞춤법은 매우 중요하다. 이 점은 무엇보다 ‘맞춤법’도 용어상으로는 ‘법’이란 사실을 되새김으로써 잘 이해할 수 있다. 자연과학에는 수많은 법칙과 원리가 있으며, 인문·사회과학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모든 ‘법’의 근본은 맞춤법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법은 우리말로 표현되어야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을 다루는 칼럼에서 무슨 맞춤법 타령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흔히 “맞춤법도 모르면서 무슨 글이나 논문을 쓰나?”라는 핀잔을 주고받는데, 이런 말은 어느 학문에서든 마찬가지다.

요즘 일기예보를 보면 때가 때인 만큼 ‘장맛비’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장마비’는 “장맛비의 잘못”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장맛비’란 말에서는 어딘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장마’와 ‘비’는 모두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리고 ‘장맛비’란 단어는 ‘장마의 비’란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이시옷’을 써서 줄여쓴 말이다. 이에 대한 해설을 보면 “사이시옷은 두개의 명사가 합쳐진 말 가운데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귓병, 냇가 등)나 뒷말의 첫소리가 ‘ㄴ, ㅁ’이거나 모음인 경우 이들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날 때(콧날, 뱃머리 등) 적는다”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장마의 비’는 본래 ‘장마비’로 적어야 하지만 ‘장마+비’가 ‘장마삐’로 발음되기 때문에 ‘장맛비’로 적는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과연 ‘장마삐’라는 발음이 바람직한 것인가”라고 따져보면 어딘지 미심쩍다.

잘 알려져 있듯 ‘꽃’이라는 말의 고어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의 민심이 어딘지 ‘거칠고 딱딱한’ 방향으로 흘러 격음과 경음이 선호된 탓에 ‘꽃’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이 설명의 뒷면에는 “이제 와서 ‘곳’으로 바꾸기는 어렵지만 격음화나 경음화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란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취지에 따라 ‘공’을 ‘꽁’, ‘효과’를 ‘효꽈’로 발음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며, 근래 ‘짜장면’도 ‘자장면’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에 비춰보면 ‘장맛비’는 얼마든지 ‘장마비’로 발음될 수 있으며, 이렇게 순화된 발음에 따라 ‘장마비’로 쓰는 편이 좋다고 생각된다. 또 어느 신문에 ‘하굣길’이란 표기가 옳다고 나왔는데, 이것도 굳이 경음화된 ‘하교낄’이 아니라 ‘하교길’로 발음할 수 있으므로 그냥 ‘하교길’로 써야 할 것 같다. 이는 통상적인 발음상 ‘촛점’, ‘잇점’으로 써야 할 것들을 ‘초점’, ‘이점’으로 순화시키는 방향과도 역행하는 일이다. 어쨌든 근본적으로 맞춤법을 좀더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맞춤법은 어렵다”는 말보다 “맞춤법도 모르나?”는 말이 더 당연하게 여겨지기를 기대한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ac.kr



덧글

  • 김정혜 2009/06/29 00:25 # 삭제 답글

    그러게요. 너무나 공감가는 얘기입니다.
    말이라는 게 신어, 사어가 있듯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느냐가 중요하고
    굳이 듣기 좋은 말을 장맛비해서 장맛을 연상시키는 말로 바꾸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요.
    정말 쓰지 말아야할 일본의 잔재인 [십분 이해가 갑니다]의 [십분]같은 말이나 좀 티비에서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괜히 멀쩡히 쓰는 말을 이상하게 바꿔 놓지 말구요.
    암튼 공감가는 글을 쓰셨기에 ...한 마디 적었습니다.
  • dd 2010/04/16 12:26 # 삭제 답글

    와 정말 공감.. 이렇게 설명해주시니 십분 이해가 가네요
  • 김명신 2010/04/20 01:22 # 답글

    2003년도에 뉴스기사라도 2010년까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이라면 이렇게 퍼 나를 만 하죠?
  • 톰보이 2010/07/13 12:58 # 삭제 답글

    정답입니다...장마비 라고 편하게 부르면 될것으로 왜그런지..장맛비 라고 맛자를 발음하기도 쉽지는 않아요
  • 마늘 2013/07/18 00:50 # 삭제 답글

    장마비로 발음할 때 '마비' 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장기의 마비로 잘 못 알아듯거나 다른 의미로 순간 오해할 경우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맛비로 발음되는 장마삐라는 음성은 다른 단어로 오해될 가능성이 매우 적기 때문에 발음에 따른 의미 전달의 정확성이 제고될 것이라 봅니다. 장마비라 쓰고 장마삐라 읽는다면 한글을 발음하는 법칙에 하나의 변칙이 허용될 것인데 문자의 사용에 있어서 이 허용이란 영역이 문학적 표현이 아닌 경우는 되도록 적게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이 우수한 이유 중 하나 역시 그 발음과 문자가 1:1 로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고요. 이렇게 생각해 봤는데 다시 한번 써 놓으신 글을 읽어보니 그도 일리가 있네요.
  • 국립국어원 2016/07/01 20:14 # 삭제 답글

    국립국어원의 가치는 국어가 어려울때 높아지나 봅니다. ... 많은 부분에서 이렇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탓 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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